• 제38회 미술품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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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t. 035

수현와구장守玄窩舊章 :완암 정내교浣巖 鄭來僑 소장 -

종이에 먹
42.7x34.3cmx2
첩/추정 KRW 5,000,000-13,000,000

출품작은 1723년(계묘) 정내교가 회천懷川(지금의 회덕)으로 떠날 때 그의 주변 인물들이 써준 증별의 시문을 모은 서첩이다.

정내교는 조선 후기 여항문학을 이끈 문장가로 시사 활동을 통해 다양한 계층과 교유하였다. 사대부 문인文人으로는 김창협金昌協과 김창흡金昌翕을 따랐으며, 위항인委巷人으로는 홍세태洪世泰를 좇아 교유하였다. 현실 비판 의식을 담은 문학 활동으로 조선 후기 여항 문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1705년(숙종 31) 역관으로 통신사의 일원이 되어 일본에 갔다가 그곳에서 시명을 날리기도 하였으며 저술로는 『완암집浣巖集』이 있다.
그는 주로 노론 계열의 인물들과 교유하여 신임사화辛壬士禍 당시 가족들과 함께 계룡산 완암곡浣巖谷으로 피신하였고, 그 이후 '완암浣巖'이라는 호를 사용하게 된다.

이 첩은 2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지에 '수현와구장守玄窩舊藏' 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수현와守玄窩'는 『완암집』에 실린 정내교의 시에도 등장하는데 정내교가 평소 썼던 당호로 여겨진다. 1첩에는 정내교의 스승인 홍세태와 김종후, 어유봉, 김성수 등의글씨가 있고 2첩에는 홍중주, 김희로, 신형하, 홍인한, 이덕중등의 글씨가 수록되어 있다.
홍세태의 문집에는 정내교가 회천으로 떠날 때 지어준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첩에는 시를 지을 때 함께 지은 것으로 보이는 송서送序가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
조지형, 「18세기 시조사의 흐름과 완암 정내교의 위상」, 『민족문화연구』 66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5, pp.423-452
조하늘, 「완암 정내교 산문 연구」, 『국문학연구』 제51호, 국문학회, 2025, pp.223-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