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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품작은 소림 조석진과 일재 김윤보가 그림을 그리고 각 폭에 일당 이완용이 화제시를 쓴 합작 사계산수 10폭병풍이다. 먹으로 그리고 약간의 담채를 쓴 수묵담채화로, 옅은 채색이 각 폭에 계절감을 부여할 수 있을 정도로만 사용되었다.
각 폭의 상단 여백에는 이완용이 화제시를 적고 '일당 제一堂 題'라고 서명하였고 마지막 폭에는 '소림小琳' 이라는 서명과 '조석진인趙錫晉印' 백문방인과 '소림小琳' 주문방인, 그리고 '일재一齋'와 '가재강남황엽촌家在江南黃葉村' 주문방인이 찍혀 있다.
이완용과 조석진은 모두 서화미술회의 운영에 참여한 인물이다.
서화미술회는 1911년 윤영기가 서울 중학동에 미술인 단체이자 교육기관인 '경성서화미술원京城書畵美術院'을 마련한 데에서 시작된다. 경성서화미술원 설립 과정에서 윤영기는 이완용과 조중응趙重應, 조민희趙民熙 등의 재정 후원을 받았고, 설립 이후에는 이왕가李王家로부터 후원을 받았다. 이후에 이완용이 실질적 운영을 위해 미술원 내부에 '서화미술회'라는 실질적 운영체를 조직하고 이완용이 회장을 맡는다. 이로서 윤영기가 퇴진하고, 안중식과 조석진이 주도하는 서화미술회가 출범하게 되었다. 서화미술회는 서과書科와 화과畵科 두 과로 나누어 학생을 모집하였는데, 이 때 조석진은 안중식과 함께 서화미술회의 화과를 맡아 가르쳤다.
김윤보는 평양화단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하나로, 당대 신문 기사에 김윤보의 '세산수細山水'와 '풍속화'에 대한 기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할 정도로 산수화와 풍속화를 잘 그렸다. 1913년 윤영기가 평양에 설립한 기성서화미술회에서 김유탁金有鐸, 노원상盧元相, 양영진梁英眞 등과 함께 제자들에게 전통 서화를 가르쳤는데, 김윤보는 산수를 지도했다고 한다. 김윤보는 장승업의 화법을 배웠는데 실제 그의 화풍은 장승업의 제자인 안중식의 산수화풍과 매우 유사하다.
1-3폭과 7폭은 봄, 4-6폭은 여름, 8-9폭은 가을, 10폭은 겨울을 그렸는데 봄과 여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봄은 연두빛으로 버드나무를, 붉은 빛으로 꽃나무를 표현했으며 여름은 산과 수목에 농묵의 미점을 써 계절감을 부각시켰다. 가을은 담황색을 쓴 단풍과 낙엽이 떨어진 나뭇가지를 표현해 겨울을 앞둔 늦가을을 묘사했다. 겨울은 눈 내린 앙상한 가지를 표현했으며 제7폭을 제외하고는 계절의 순서를 따르며 그렸다.
조석진과 김윤보 모두 장승업의 화풍을 배웠기 때문에 유사한 필치를 보인다. 평소 그들의 그림보다 세밀함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서화미술회가 출범하던 1910년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김윤보의 사계산수화병풍은 세종대학교박물관, 송암미술관, 호림박물관에 전하는데, 세종대학교박물관 소장본은 안중식이 화제를 쓴 것이 특징이다. 비교적 담채의 사용이 많은 세종대학교박물관 소장본을 제외하고는 출품작과 유사하게 먹에 약간의 담채를 곁들인 수묵담채화이고 봄과 여름 풍경을 그린 폭이 많은 것도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출품작은 그림, 글씨 모두 화가의 기량이 온전히 발휘된 수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20세기 초 화단의 중심이 되는 인물들의 교유관계가 반영되어 있어 사료가치가 매우 높은 작품이다.
참고문헌 | 강영주, 「일재 김윤보의 산수화 연구-사계산수와 평양성도를 중심으로」, 『열린정신 인문학연구』 제24집 제3호, 원광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24, pp.89-126